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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벽에 부딪치기: '버티칼 리미트'는 없음을 깨닫기 3 - 짐 콜린스
작성자: 관리자   등록일: 2010-03-17 23:48:42   조회: 1836  


벽에 부딪치기:‘버티칼 리미트'는 존재하지 않음을 깨닫기 3

Hitting the Wall: Realizing that Vertical Limits Aren't

by Jim Collins

September 2003

 

UPWARD BOUND: Nine Original Accounts of How Business Leaders Reached Their Summits라는 책의 1장과 에필로그에 나온 글입니다. Michael Useem, Jerry Useem and Paul Asel 편집.

 

 

암벽 등반이 내게는 최고의 교실이었다. 비즈니스, 경영, 리더십 및 과학적 연구 같은 삶의 모든 면에 적용할 수 있는 교훈을 배울 수 있어서다. 암벽 등반은 자신의 실수로부터 두 번 배울 수 있는 기회를 항상 가질 수는 없는 스포츠이지만—죽음이 배움의 과정을 중지시킬 수 있으므로—나는 운이 좋아 실수했으나 살아남았다. 이 장에서, 등반이라는 교실을 통해 배운 내가 좋아하는 교훈 그리고 그 교훈이 삶과 등반 외의 일에 적용되는 방식을 소개하고자 한다.

 

1) 전력을 다하다 추락할 때까지(Fallure) 등반하라, 그냥 실패하지 말고.: 정상에 이르지 않고 성공하는 법

 

2) 미래에 있는 듯이 <오늘> 등반하라: 마음가짐을 바꾸어 성공하는 법

 

3) 가능성과 결과를 구별하라: 진정한 리스크를 이해함으로써 성공하고 살아남는 법

 

4) 파트너 공조 협정을 만들라: ‘첫째 누구’, '다음에 무엇‘를 할지를 택하는 방식을 실천하여  성공하는 법

 

5) 운과 자신의 능력을 혼동하지 말라: 성공했기 때문에 죽는 일을 방지하는 법

 

 

 *   *   *   *   *


교훈 #4: 파트너 협정을 만들라: ‘첫째 누구“, ’다음에 무엇‘이라는 수련을 통해 성공하기
(Lesson #4: Form the Partner's Pact: How to Succeed by Practicing the Discipline of First Who, Then What)

1978년, 짐 로간이 마운트 로빈슨 북벽을 하기로 맘을 먹었다. 캐나다 로키 산맥에 있는 등반된 적이 없는 엠퍼러 페이스(the Emperor Face)라는 벼이다. 로간이 전에 두 번 해봤으나 패배하고 말았다. 세 번째 시도에서는 성공했다. 마지막 성공의 열쇠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받자 이렇게 말했다: “중간 표시 지점 위에서 후퇴가 불가능한 지점에 이르는 것이 문제다. 거기에 있는 사람에게 와줄 사람은 아무도 없다—등정하거나 죽는 수밖에 없다. 사진으로 그 벽을 자세히 관찰했지만, 내가 상상했던 루트가 궁극적으로 등반이 가능한지 여부는 말할 수 없었다. 내 전략의 가장 중요한 요소는 그 루트의 특정한 사항이 아니라 누구를 파트너로 택하느냐에 달려 있음을 깨달았다. 그 벽 위 높은 곳에서 무엇을 만나든 가장 큰 성공 가능성을 줄 수 있는 파트너가 필요했다. 그래서 내가 먹스 스텀프와 한 팀을 이룬 것이다.”

로간이 회상하는 바에 의하면, 스텀프는 너무 등반 열정의 병이 깊어, 미국 풋볼 리그 (NFL) 트레이닝 캠프로 향하던 중 차를 돌려 요세미티 계곡으로 가서 그 여름 내내 등반하며 지냈다. “먹스는 펜실베니아의 어느 철 생산 도시 출신으로서, 대학의 스타급 수비 선수 그리고 NFL 드래프트 선수로 선발되는데 성공한 그 도시의 젊은이었다. 가족과 친구들은 그가 장래가 촉망되는 경력을 버리고 등반하는 이유를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먹스는 신경 쓰지 않았다. 먹스는 오직 등반하기만 원했고, 맹렬하고 진지하게 등반에 뛰어들었다. 세계에서 제일 힘든 루트 몇 개를 오름으로서 그가 택한 분야에서 성공하려고 했다.

먹스는 엄청난 체력과 기민성이 있는데다가, 등반 계에서 제대로 인정을 받겠다는 의욕이 광적일 정도이어서, ‘엠페러 페이스(Emperor Face)'를 하기 위한 최고의 파트너이었다. “내가 느낀 것은, 그 벽 위에서 어떤 일이 생기든, 먹스는 우리를 탈출시킬 수 있을 정도로 강했다는 점이다. 물론, 나중에 내가 알게 된 점은, 가장 우아한 길을 찾는데 필요한 지성이 내게 있으므로, 내가 그에게 맞는 파트너라고 막스가 느꼈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나는 머리, 그는 체력이 좋았다. 그는 우리 팀의 강점이 나라고 생각했고, 나는 우리 팀의 강점이 그라고 생각했다. 서로 각자에 대해 믿음이 있었고, 그 믿음 때문에 정상 아니면 죽음의 존(zone)으로 들어설만한 자신감을 우리가 가졌다.”

스텀프와 로간이 그 벽의 어려운 곳을 번갈아 해결하며, 교대로 선등했다. 두 사람 다 각기 “휴우, 당신이 그 피치를 선등해서 좋았어”라는 식으로 여러 번 말했다. 마지막 날, 그 끝에 있는 힘든 구간을 로간이 맡았다. 눈과 얼음, 바위 피치 모두가 베이스캠프 위 7천 피트에서 하나의 긴 헤드월 안에 다 섞여 있었다. (‘피치’라는 것은 두 개의 앵커 지점 사이의 등반하는 양을 말하며, 로프 한 동의 길이보다는 짧다. 지면으로부터 첫 앵커 지점까지가 피치 1이고, 첫 앵커 지점에서 두 번째 앵커 지점까지가 피치 2이며, 그런 식으로 계속된다. 앵커 지점 또는 앵커 스테이션은 선등하는 클라이머가 빠질 수 없는 않는 장비 한 세트를—앵커—끼우기 위해 멈추는 바위 턱이나 장소를 말하며, 그런 다음, 이 앵커가 마지막 안전 확보 지점으로 쓰이고, 다른 클라이머가 등반할 동안 빌레이(belay) 로프를 잡고 있는 사람이 거기에 서 있게 된다. 그 앵커 포인트가 실패하면, 두 명의 클라이머가, 로프에 같이 묶인 채, 바닥으로 추락하게 된다.)


“내가 끼울 수 있었던 단 하나의 1인치 앵글 피톤 위로 12미터를 내가 등반해야 했다. 확보물을 설치할만한 좋은 크랙이 그 벽에는 전혀 없었다. 내가 그걸 해내지 못하면, 추락하면, 집중력을 잃으면, 여하튼 그 등반을 날리면, 나는 물론이고 먹스도 죽게 된다. 둘의 목숨이 내 수중에 있었고, 내개 반드시 그 등반을 해내야 했다. 아이스 액스를 그 벽의 정상에 딱 박고 맨틀링 동작으로 정상 위로 올라선 후, 피로에 지쳐 그 정상 위에 엎어져 있었던 것이 기억난다. 하지만 그 피치의 나머지는 거의 생각이 안 난다. 그 마지막 헤드월에—약 40미터의 등반—8시간 정도 있었던 듯 한데, 사실 시간 감각이 없었다.”


먹스 스텀프와 짐 로건이 등반한지 4반세기가 지난 지금, ‘엠페로 페이스’ 한가운데를 등반한 사람 중 유일하게 살아 있는 클라이머는 짐 로간이다. 그 동안 그 루트를 해봤던 모든 클라이머가 거기서 죽거나 패배했고, 애석하게도, 먹스 스텀프도 맥킨리에서 폭풍설을 만난 경험이 부족한 클라이머 그룹을 가이드 하다가, 십년 후 죽었다. 먹스를 알았던 그리고 그와 같이 등반하는 특권을 누렸던 모든 사람이 같은 말을 한다: “먹스가 그립다. 훌륭한 파트너였다.” 모험의 세계에서 그보다 더 높은 찬사는 없다.
 

‘엠퍼러 페이스’를 통해 가장 근본적인 교훈을 볼 수 있다: 우리가 내리는 가장 중요한 결정은 무엇에 대해서가 아니라, 누구냐에 대해서다. 우리는 “무엇” 위주의 문화에 산다. 무엇을 할까? 무엇이 우리의 전략일까? 무엇이 우리의 작전일까? 무엇을? 무엇을? 무엇을? 가장 중요한 결정은 산을 오르기 위해 “무슨 전략을 써야 할까?”가 아니라, “누구와 같이 등반해야 할까?”다. 이것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것이 “파트너 협정(Partnr's Pact)”이라는 원리다: dedication 산을 오르는 헌신적인 노력뿐이 아니라, 상대방을 산 위로 데려갔다가 안전하게 하산케 하겠다는 commitment 서약이다. “첫째 누구, 그 다음에 무엇”이라는 원리를 파트너 협정과 결합할 때, 성공 가능성이 증가하고 그 등반 전체가 더 깊은 의미를 갖는다.


“첫째 누구”라는 원리가 결국 다른 직업 분야의 사람을 위한, 특히 위대한 회사를 만들기 위한, 근본 원리가 되고 만다. 5년간의 리서치 프로젝트에서, 그저 괜찮은 정도이었던 (또는 나쁜 편인) 회사가 시간이 흘러도 지속적으로 뛰어난 셩과를 올리는 진정으로 위대한 회사로 도약하는 극소수의 회사를 동료와 내가 연구했다. 패니 매가 데이빗 맥스웰이 패니 매(Fanny Mae)의 CEO가 되었을 때, 560억 달러의 근저당 대출로 mortgage loan 손해를 보고 있는 상태에서 영업일 하루마다 백만 달러를 잃고 있었다. 회사 포트폴리오(각종 금융 자산의 집합)의 매도가와 매입가의 차이가 -6%이고, 끝이 보이지 않아, 대부분의 애널리스트는 패니 매의 미래가 가망이 없으며, 망하리라고 보았다. 이사회가 맥스웰에게 회사를 구하기 위해, 그가 무얼 하겠느냐고 물었을 때, 그건 잘못된 질문이라고 맥스웰이 답했다. 영원히 잘못된 질문은 아니나, 처음에는 잘못된 질문이라는 것이었다. 가장 적합한 사람이 버스에 타고, 안 맞는 사람은 버스에서 내리고, 적절한 사람이 적절한 자리에 앉기까지는 버스를 어디로 몰고 갈지를 맥스웰이 정하려 하지 않았다. 그런 다음에야, 비로소 어디로 몰고 갈지를 구상하려고 했다. 로간처럼, 맥스웰도 산에 대한 대강의 아이디어는 있었으나 (패니 매를 구하여, 위대한 모기지 파이낸싱 회사로 전환하기) 정확히 어느 길로 가야 그가 정상에 이를지는 몰랐다. 그래서 훌륭한 사람들이 궁극적인 승리를 위한 최선의 “전략‘을 마련하리라고 생각하며, 적절한 파트너를 뽑았다.


맥스웰의 접근법은 우리의 리서치에서 발견한 일반적 패턴을 나타낸다. 좋은 회사를 위대한 회사로 키운 리더는 먼저 전략을 짜고 난 다음에 사람들에게 그 전략을 실천하게 하는 방법을 찾으려 하지 않았다. 젇반대다. 먼저 올바른 사람을 버스에 태우고, 옳지 않은 사람은 버스를 내리게 하고, 올바른 사람을 올바른 자리에 앉히고 난 다음에 어디로 차를 몰고 갈지를 찾는다. 우리가 역시 발견한 점은, ‘굳'에서 '그레이트'로 가는 (good-to-great) 팀에 있는 사람은 자신의 일을 좋아 했는데, 그 이유는 주로 같이 일하는 사람을 좋아했기 때문이었다. 그런 사람들은 서로 친구가 되고 평생 친구 관계를 유지하는 경향이 있었으며, 퇴직 후 세월이 한참 지나도 여전히 서로 연락한다. 그런 사람들은 정상에 가는 것 자체는 의미 있는 삶과 거의 무관하며, 그 반면에 같이 시간을 보내기 위해 누구를 택하느냐 하는 것이 우리의 삶의 질과 의미에 밀접한 관련이 있음을 이해했다. 그리고 위험이 감춰져 있는 상황에서는, 무엇보다 먼저 올바른 사람을 찾은 사람이 정상에 이를 가능성이 더 많았다.

 
일단 ‘첫째 누구‘의 원리를 이해한 다음, 등반에 접근하는 나의 방식도 바꾸었다. 이제는, 이번 주말에 내가 등반하고 싶은 곳이 어디인가라는 관점에서 생각하지 않으며, 누구와 같이 등반하고 싶은가라는 관점에서 생각한 다음, 어디를 등반할지를 같이 찾는다. 등반에 대한 나의 사랑과 그리고 등반이 삶에 가져다주는 의미가 늘어났는데, 그 이유는 주로 내가 같이 등반하기로 한 사람들과 지내는 것이 즐겁기 때문이다.


내가 ‘파트너 협정’의 기쁨도 발견했다. 짐 로간이 내가 즐겨 같이 등반하러 가는 “누구” 중의 하나가 되었다. 스포츠클라이밍 루트를 같이 연습하다가 우리 중 한 명이 먼저 그 루트를 올라가면, 그 사람의 파트너가 그 루트를 완등 하는데 필요할 때까지 수없이 그 루트로 그 사람이 돌아온다. ‘캡틴 처치’라는 루트는 40피트의 오버행 바위인데 완등 하기까지 여러 날이 소요되었다. 로간보다 키가 더 커서, 열쇠가 되는 홀드에 더 쉽게 이르므로, 내가 그 루트를 먼저 올라갈 수 있었다. 하지만, 우리는 대여섯 번 그 루트로 돌아왔고, 그런 다음 로간도 그 루트를 올랐다. 그가 성공한 날, 내가 그 톱까지 갔을 때만큼 똑같이 신났다. 그 루트의 기쁨과 의미는 개인적 성취가 아니라, 서로 각기 그 루트를 오르게 해주었다는 것, 그리고 좋은 친구와 같이 산에 나와 있는 과정의 일분 일분을 minute by minute 즐기는데 있었다. 이것이 ‘파트너 협정’의 본질이다.


물론, 클라이머마다 동행하는 또 다른 파트너가 있다. 말없고 눈에 안 보이는, 운이라는 파트너다. 이 파트너와는 협정을 만들 수 없음을 등반을 통해 배웠다. 그렇기 때문에, 너무 운에 많이 의지하면, 결국 죽고 말 수도 있다. 바로 이 점이 등반이라는 교실의 마지막의 그리고 아마도 가장 중요한 교훈으로 우리를 데려간다.

교훈 5: 운과 능력을 혼동하지 말라: 성공으로 인해 죽음에 이르지 않기
(Lesson #5: Don't Confuse Luck and Competence: How to not let Success Kill You)
 

1979년 어느 봄날, 내가 겸손을 배웠는데, 거의 잃을 뻔한 내 목숨과 파트너의 목숨이 그 수업료이었다.

 
그 전 해에 나는 계속 운이 좋았다. 어려운 루트 몇 개를 끝냈고, 그 과정에서 아슬아슬한 위기를 몇 번 무사히 넘겼다. 어느 루트에서, 바위 위로 작은 돌 조각들이 휙 지나가는 걸 느끼고 난 다음, 차 크기의 바위덩이가 쪼개지면서 빠져나와 무시무시한 우르릉 소리를 내려 절벽 아래로 쿵쿵 튀면서 내려갔다. 그 바위덩이가 작게 부서지면서, 내 주위로 그 조각들이 튀었는데 나는 단 한 번도 맞지 않았다. 또 어느 루트에서는, 너덜 위 까지 곧장 뻗어 있는 200피트 길이의 절벽 위에 발을 걸쳐 놓고 흔들흔들하며, 서드 플랫아이온(Third Flatiron) 북벽을 내려다보는 급경사 오버행 위에서 내 파트너를 빌레이 본 적이 있다. 그 꼭대기에 이르자, 내 파트너가 앵커를 보고 잿빛이 되었다. 파트너가 내가 못 본 점을 지적했다. 실제로 그 벽에 붙어 있지 않은 큰 바위덩이 뒤에다 앵커를 내가 설치했던 것이다. 그 오버행 위에서 내 파트너가 추락하는 경우엔 그 앵커 위로 내가 바싹 당겨지면서, 바위덩이와 모든 게 떨어져 나와, 우리 둘 다 로프와 몸이 엉켜서 한 덩어리가 되어 바닥까지 자유 낙하를 하고 말았을 것이다. 아마 “우리가 죽는구나”라고 생각할 수 있을 정도로 한참 공중에 떠 있을 뻔했다. 그런 후 ‘줄 베르느‘라는 세 번째 루트에서 내가 있어야 할 지점의 오른쪽으로 10피트를 등반했는데, 실수를 깨달았을 때는 원래 힘든 등반을 끝냈어야 하는 지점보다 한참 위로 올라갔고, 크랙 속에 박은 마지막 확보용 너트 위를 30피트나 지난 것이었다. 루트로 돌아가려고 그 벽을 조심스럽게 트래버스 하려고 애썼으나, 발이 쑥 빠지고, 60피트를 떨어지면서 큰 원호를 그리고 있는 로프를 내려다보게 되었다. 이럭저럭, 벽이 조금 삐죽 나와 있는 곳의 오른쪽으로 지나갔고, 아무것에도 충돌하지 않고 로프에 팽팽하게 매달리게 되었다. 겁을 내며 바위에서 떨어졌으며, 파트너의 말에 의하면, 원초적이고 동물 같은 비명을 질렀다고 하며, 상처는 없었다. 긁힌 데조차 없었다.


당시에는 내가 어렸고 남자이어서, 운이 좋았다는 생각은 사실 없었다. 내가 잘했기 때문에 살았고, 또 그 루트를 등반했다는 마음이었다. 다른 클라이머가 죽으면, 그런 사람은 틀림없이 내가 가진 어떤 기술이 부족했으리라고 짐작했다. 운이라고 볼 수는 없었다.


그러나 시니컬 피너클(Cynical Pinnacle)이라는 암벽에서, 얼마나 내가 잘못이었는지 알게 되었다. 지나친 오만으로 인해 죽기 전에, 다행히 겸손을 배우게 되었다.


경험 없는 파트너를 나꿔채어 나와 같이 바위하러 가자고 한 적이 있다. 딕이라는 사람이었다. 그사람의 성도 몰랐다. 그 지역의 등반 장비 점 앞에서 등반하러 가자고 그냥 그를 설득했다. “같이 갑시다. 평생 잊지 못할 모험이 될 거요”라고 꼬드겼다. 내게는 딕이 그 루트를 오를 만한 경험이 있는지 여부는 문제가 안 되었다. 너무나 체력이 좋고 컨트롤 할 능력이 있다고 느껴서, 오직 내가 필요한 것은, 또 내 생각으로는, 빌레이 로프를 잡고 있을 수 있다면 어떤 사람이어도 상관이 없었다. 그에게 로프 타고 오르는 어센딩 장비를 로프에 고정시키고, 각 피치가 끝날 때 내 뒤를 따라 올라오게 해놓았다.


오후 늦게 ‘시니컬 피너클’의 정상 헤드월 밑에 있는 바위 턱에 도착했다. 이른 봄에 큰 폭우가 오기 전에 늘 그렇듯 공기가 뻑뻑했다. 우리가 있는 앵커에서 내다보니, 안개 여울이 콜로라도 로키 산맥의 눈 덮인 봉우리를 차츰 삼키고 있었다. 겨우 몇 시간 전에는 따스하고 만지기 좋았던 바위가 이제는 차고 만지기도 “15m만 가면 되네”라고 바위의 마지막 구간을 올려보며 내가 말했다.


“과감히 가야 될 것 같아.”


“짐, 난 잘 모르지만”이라고 딕이 말하면서 “난 지쳤고, 게다가 폭풍까지 몰려오고 있어요. 정상에 도착했다 번개가 치기 시작하면, 우린 꼼짝없이 당할 거예요”라고 했다.


그가 옳았다. 우린 거대한 피뢰침 위에 앉아 있는 셈이 되리라. 그러나 나는 힘이 있다고 느꼈고, 충분히 빨리 올라갔다가 내려갈 수 있게 내가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눈을 둥그렇게 뜨고 있는 딕을 빌레이 바위 턱에 남겨 둔 채, 내가 빨리 움직이며, 마지막 피치를 선등했다.


‘시니컬 피너클’의 가장 힘든 루트인 ‘더 프레어 북’ 정상에 이른 직후 느낀 도취감은 펑 하는 이상한 소리가 들리면서 갑자기 끝나고 말았다. 뭔가 잘못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뭔가 굉장히 잘못됐다. 그런 다음 그 소리를 낸 것이 로프와 등반 장비였음을 알았다. 머리를 만지려고 팔을 올려보고 머리카락이 곤두선 것을 깨달았다. “딕! 이 암봉 전체에 번개가 칠거야.” 정상에 있는 앵커 볼트에, 도르래처럼, 로프를 웠다. “나를 도로 거기로 내려줘.”

 
딕은 나보다 경험이 적어 장비를 갖고 더듬거렸다. “빨리해! 지금!”이라고 내가 외쳤다. 그가 허리에 로프를 감고 도로 그 바위 턱까지 주춤주춤 나를 내려 준 직후에 우리 주위로 번개가 마구 쳤다. 놀랍게도, 번개가 우리 쪽으로 낙석을 일으키진 않았다.


입 안에 아직 두려움과 아드레날린의 쓴 맛을 느끼고 있을 때 “그럼, 이제 어떻게 내려가요?”라고 딕이 물었다.
 

좋은 질문이었다. 우리가 올라온 쪽에는 하산 루트가 없었다. (하산 루트는 동쪽사면 위에 있었고, 그 바위 정상에서 로프로 하강하게 되어 있었다.) 우리는 그 서쪽사면 위, 정상 밑 약 100피트 정도에서 오도 가도 못하고 있고, 번개 때문에 정상까지 돌아갈 수도 없었다.) 게다가, 벽이 오버행 각도이어서, 우리는 허공에 매달려 있다가 로프에서 스윙하여 다음 앵커 지점에 이르러야만 했다. 하지만 우리는 음식도 물도 여분의 옷도 갖고 오지 않았으니, 폭우가 지나기를 기다리고 있을 수도 없었다. 우리가 시작했을 때 기온이 화씨 75도로 따스했기 때문에 딕은 반바지만 입고 있었다. 그러나 지금, 기온이 화씨 50도 정도이고 점점 떨어지고 있는 가운데, 초봄의 본격적인 (한냉) 전선을 맞이하게 되었다. 이제 낮이 두 세 시간 밖에 남지 않아, 우리가 뭔가를 해야 했다.


우리는 하강 장치를 설치했다. (하강은 로프에 의지하여 몸을 뒤로 젖히고 마찰력 장비를 써서 로프 위로 미끄러져 내려가는 방법으로서 영화에서도 같은 방법을 볼 수 있음.) 내가 반드시 앵커 지점까지 도로 스윙하여 돌아올 수 있도록, 발로 벽을 차며 먼저 내려갔다. 로프 끝 가까이에서, 벽 쪽으로 스윙하여, 장비를 탁 박고 한 세트의 앵커에 나를 묶어 맸다.

 
딕이 하강했다. 벽을 발로 차지 않았기 때문에 그냥 허공에 달랑 매달려 있게 되어, 긴 머리카락 끝의 껌 뭉치처럼 뱅글뱅글 돌았다. 다행히, 로프 끝을 내가 잡고 있었으므로, 내가 이미 앵커하고 있던 벽 쪽으로 그를 끌어 당겨 그를 묶어 맸다.

 
“오케이, 자네는 앵커 속으로 로프를 끌어당기고, 나는 다음 하강을 위해 앵커를 준비할께”라고 그에게 지시했다. 우리는 지면 위 90 미터에 있어, 적어도 두 번은 하강해야 했다. 내가 앵커 설치 작업에 착수했다.


“짐, 로프가 안 당겨져요.”


“뭐라고? 잘못된 쪽을 당길 수도 있어, 로프를 내게 줘봐.”


그가 로프를 주어 내가 당겨보았다. 꼼작 안했다. 정말 꽉 낀 것 같았다. 속이 뒤집히기 시작하는 느낌이 들었다.


아래로 내려오기 시작할 때 매듭이 반드시 크랙에 안 끼이도록 확인했어?”
 

“아뇨. 그래야 됐나요?”
 

자, 이제 우리가 곤경에 처했음을 알았다. 로프 두 동을 묶은 매듭이 크랙 속에 꽉 끼었을 수 있었다. 로프를 세게 당길수록, 더 꽉 끼이기 마련이다.
 

우리의 우측 9미터 쯤 되는 곳에서 긴 크랙을 찾았다. “로프를 하니스에 묶고 저쪽 크랙으로 내가 스윙해서 넘어가겠어. 아마 그래야 그 매듭을 빼낼 수 있을 만한 각도가 될지도 몰라.”
 

하니스에 로프를 묶고, 그 크랙으로 휙 날아서 건너가도록, 발로 바위를 차면서, 그 로프에 의지한 채 그 쪽으로 스윙했다. 거기에 이르러 바위 모서리를 잡고, 작은 바위 턱 쪽으로 몸을 당겨 또 하나의 앵커를 끼울 수 있었다. 로프를 당겼다. 정말 운이 없었다. “딕, 내가 이 크랙을 조금 올라가서 더 높은 곳에서 로프를 빼낼 수 있을 거야. 한번 그렇게 해볼께.”
 

“올라가기 전에, 당신의 셔츠를 내게 건네 줄 수 있어요? swing 너무나 추워지기 시작해서 손이 제대로 움직이질 않아요.” 내 긴 팔 럭비 셔츠를 벗어 로프 끝에 묶었다. 딕이 자신이 직접 확보되어 있는 앵커에 의지하여 몸을 뒤로 젖혔다.
 

“오케이, 딕. 지금 보낸다.” 내가 로프를 그가 있는 쪽으로 휙 던졌고 로프가 벽을 가로질러 날아갔다.
그가 로프를 못 잡았다.


로프가 도로 내 쪽으로 스윙 하여, 그걸 잡으려고 그 쪽으로 몸을 기울였다. 잡으려는 내 손가락에 조금 못 미치는 곳으로 로프가스윙하면서, 그 모든 일이, 속이 뒤집히는 장면이 연속되는 슬로 모션처럼 벌어졌다. 깜짝 놀라서, 로프가 우리 둘 사이의 중간에 멈추어 있는 믿기 힘든 모습을 그냥 멍하니 보았다. 자, 우리는 지구 표면 위 90미터 지점에 있다. 그런데 지금은 로프조차 없다.


처음으로, 무시무시한 생각이 마음에 떠올랐다. 그 동안 내내 운이 좋았는데, 가장 운이 필요한 바로 이 때, 내 운이 다 떨어진 것 같았다.


세 가지 옵션이 있었다. 첫째, 그 끼인 로프까지 올라가볼 수 있었다. 위쪽 바위가 급경사임을 감안하면, 이 옵션은 대단히 불안했다. 둘째, 구조되기를 기다리면서, 우리가 예정된 시각에 집에 돌아오지 못했음을 누군가가 알아주기를 바랐을 수도 있었다. 이 방식은 곧 죽음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기온이 내려가고 비가 점차 더 많이 오므로 결국 저체온증에 걸리고 말기 때문이다. 밑에 있는 완경사 크랙까지, 그리고 그 다음에 바닥까지 클라이밍 다운함이 최선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내가 추락하여 죽지 않는다는 가정 하에, 거기에 전화를 찾아 한 등반 친구에게 전화를 건 다음, 도로 딕에게 까지 내가 올라와 그를 암벽에서 데리고 내려 기야 할 듯 했다.


“정말로 그래야 해요?”라고 딕이 물었고 이어서 “당신이 떨어지면 어떡하죠?”라고 했다.


“내 생각엔 그게 최선이야. 뭔가 하지 않으면, 이 위에서 죽고 만다고.”


그 날 중 반드시 그에게 돌아오겠노라고 딕에게 약속했다. 그런 다음 심호흡을 하고 앵커에서 확보 줄을 빼고 안전조치도 없이 다운 클라이밍 하기 시작했다. 비로 인해 미끄러운 그 바위에도 큰 유리한 점은 있었다. 5cm 폭의 크랙이 있어, 뼈대를 쓰면서, bone structure 안에다가 쐐기처럼 손을 끼우고, 옆면에 대고 단단히 고정시키기에 딱 좋은 크기였다. 굉장히 든든하게 핸드 잼(hand jam)을 하여. 설사 발이 미끄러져도, 인간 캐밍(camming) 장비처럼, 손이 그 크랙 안으로 더 단단히 돌아가면서 꽉 낄 (torque) 수 있게 했다. t한 동작 한 동작, 그 크랙을 조금씩 내려가면서, 신중하게 한 시간 정도 움직여, 결국 땅에 섰다.

 
15 시간이나 먹지 못했고, 물 부족으로 목이 바싹바싹 탔고, 근육은 힘이 다 빠졌다. 벽은 위로 우뚝 솟아 있었다. 높고 컴컴하게, 회색 빛으로. 그리고 내 파트너는 아직 그 암벽의 수중에 있었다. 겨우 몇 시간 지나면 어두워진다.


그러다가 이상한 소리를 들었다. 타-타-타-타. 헬리콥터가 우리 쪽으로 오는 걸 보았다. 길이 있는 쪽을 내려다보니 지프차와 승용차, 밴, 소방차, 트레일러 20여대가 길게 늘어서 있는 걸 보았다, 한 여자가 거기에서 하이킹하다가 우리의 상황을 보고 구조를 청했다는 생각이 문득 떠올랐다. 이제, 우리가 진짜 곤경에 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사람들의 선의를 의심한 게 아니다. 다만 보안관과 소방대원은 대개 힘든 암벽 구조를 하는 법을 잘 모른다. 책임자를 찾기 위해, 얼른 산 아래로 뛰어 내려갔다.

 

“저 사람이예요”라고 배가 불룩 나온 사람을 가리키며, 누군가 말해주었다,


그에게 얼른 뛰어가서, 마구 손짓 발짓으로 어둡기 전에 그리고 저체온증에 걸리기 전에 빨리 그곳으로 어떻게 돌아가야 하는지를 말했다.


“좀 진정해, 젊은이. 우리가 다 해결할 수 있어.”


“이봐요. 내가 지금 필요한 견, 빌레이 볼 수 있는 사람, 로프와 장비 몇 개예요. 내가 직접 그에게 갈 수 있어요.”


“안 돼. 이건 대단히 위험한 일이야”라고 그이가 말했다.


“매우 위험한 건 알아요. 지금 당장 행동하지 않으면, 훨씬 더 어려워져요. 당신네가 안 도와줄 거면, 로프 한 동 갖고 내가 거기로 직접 갈 겁니다.”


“젊은이! 진정하고 조용히 있지 않으면, 자네를 보호하기 위해서 체포할 거야.”


속에서 울화가 치밀었다. 그 보안관이 아니라, 내 자신에게. 우리가 곤경에 처한 것은 보안관의 잘못은 아니었다. 내 잘못이었다. 순전히 내 잘못이었다.


“오케이”라고 내가 누그러졌다. “어떤 식으로 하려고요?”


“말 타고 그 사람에게 갈 수 있을까?”라고 보안관이 물었다.


“말이 오버행 5.10 크랙을 등반할 수 있다면 모를까 어림없어요.” 그 상황을 이해하지 못함을 드러내며, 당황하는 모습을 그가 보였다. 아마 그는 우리가 길 잃은 등산객이라고 생각한 게 틀림없었다. 무선으로 헬리콥터 조종사에게 말하고 싶다고 내가 청했다. 그 파이롯에게 벽 위에 홀로 있는 사람에게 스포트라이트를 비추도록 내가 지시했다. 딕은 우주 왕복선 옆으로 과감하게 나왔다가 발판을 떼어내자, 그 옆에 위태롭게 남아 있는 사람처럼 보였다.


“알았어요. 이제 그이가 보이네요”라고 파일롯이 무선으로 답했다.
 

보안관이 그때서야 말 갖곤 되지 않음을 깨달은 듯 했다.
 

로프 몇 동을 써서 헬리콥터에서 그 암벽 꼭대기로 나를 내려 주는 것을 포함하여, 여러 가지 옵션에 대해 입씨름을 한 후, 최선의 선택은 가장 단순한 방식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내게 등반 파트너 한 명을 구해주면, 곧장 딕 있는 곳까지 등반하여 그를 내려 보낼 예정이었다. 구조대원 중 한 사람이 등반 경험이 있어 딕에게 가기 위해 내가 그 절벽 위로 오를 때 확보를 보아주겠다고 나섰다. 이미 컴컴해져서 모든 서치라이트를 그 뾰족한 암봉에 비추도록 보안관이 지시했다. 안개가 그 뾰족한 암봉을 에워싸고 있어, 칠흑 같은 어둠을 배경으로 으스스하게 연한 녹색 빛을 발했다.
딕이 있는 쪽으로 올라가는 크랙을 우리가 찾아내어, 그 삐죽빼죽한 그림자 속에서 한 시간 동안 힘들게 올라가, 드디어 딕이 있는 곳에 이르렀다.
 

"딕, 걱정하지 마. 이제 우리가 왔으니까.“ 딕은 대답이 없었고, 머리만 천천히 끄덕였다. 그의 피부를 만져보니 차가웠다. 매우 차가웠다. 우리가 하강하는 줄을 깔고, 구조대 파트너의 도움을 받아, 딕을 바닥으로 내렸다. 새벽 3시 경 드디어 그 힘든 고생이 끝났고, 딕은 응급처치를 받았다. 딕의 몸통 체온이 오르자, 그가 죽지 않을 것이고, 언젠가 다시 등반하러 올 수 있을 것임을 알았다.

 

그리고 나도 그러겠지만, 더 진지한 태도로 그리고 달라진 시야로 말이다. 등반이라는 교실을 통해 어쩌면 가장 중요한 교훈을 내가 배웠다. 즉, 자기 때문에 성공했다는 오만한 태도로 활동할 때—“내가 성공한 이유는 뭐, 나였으니까, 정말 내가 훌륭하니까”—그 때가 바로 모든 리스크 중 가장 큰 리스크에 봉착하는 때다. 지속적인 성과는 (그리고 등반에서는, 살아남아야만 오래 지속하는 성과를 올릴 수 있다.) 용기와 의지 뿐 아니라, 겸손이라는 엄격한 형태의 자신에 대한 정직성도 요한다.
 

‘시니컬 피너클’을 한지 20년 후, 자신의 회사를 좋은 회사로부터 위대한 회사로 지속적으로 도약하도록 이끄는데 실패한 경영자와는 대조적으로, 좋은 회사를 맡아 위대한 회사로 만들어낸 어려움을 극복하고 만들어낸 몇 안 되는 경영자의 내면이 작용하는 방식을 이해하려고 노력해왔다. 내 리서치 팀과 내가 “창과 거울”이라고 부르는 극히 재미난 패턴을 인식하게 되었다. 비범한 성공이라는 부정할 수 없는 사실에 직면했을 때, good-to-great(좋은 회사를 위대한 회사로 키운) CEO들은 그 성공의 원인을 자신 외의 다른 요소들이라고 창을 가리키며, 매우 조심스럽게 다른 사람과 행운에 그 공을 돌리는 성향이 두드러진다. 한 good-to-great CEO의 말에 의하면, 그의 재직기간 중 그 회사가 성공한 이유의 80퍼센트 정도는 순풍 때문이었다고 했다. 덜 성공한, 다른 비교 대상인 회사도 똑 같이 순풍을 만났고 더 큰 돛을 달았었다고 내가 지적하자, 그는 “음, 그러면 정말 우리가 운이 좋았던 거요”라고 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겪은 좌절과 실패를 물어보자, good-to-great CEO들은 결코 창문을 가리키지 않았고, 거울 앞에 서서 “내 책임”이라고 말하곤 했다. 그와 대조적으로, 비교 회사의 경영진들은 창을 가리키며 불공정 경쟁, 경기, 시장 등이 실패와 좌절에 책임이 있다고 지적하곤 한다. 그러나 일이 잘 되어 갔어도, 그런 CEO는 거울을 들여다보며 그 성공은 주로 자기 자신이 개인적으로 뛰어났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심지어 어떤 사람은 자축하는 자서전을 출판하기까지도 한다. 겸손하게 자기 이름을 타이틀로 써서.
 

1990년대를 돌아보면, 당시 사업하는 사람들의 한 세대 전체가 역사상 가장 엄청나게 주식가격이 올라가고 마구 사들이는 주식 시장의 덕을 보았다. CEO들은 자사 주식이 두 자리 수로 오르는 걸 보았고, 스톡옵션으로 상당한 금액을 자신들에게 지불했다--마치 자신이 그 전반적 상승세를 만들어낸 듯이. 아직 어린 IT 사업가들은 자신을 무적이라고 여겼고, 중력 법칙과 지속 가능한 수익성 창출 같은 기본 사항을 무시할 수 있다고 믿게 되었다. 수천 명의 투자가가 그들의 401ks 상의 상승을 그들의 투자 재능과 동일시하는 함정에 빠졌고, 수백 명의 벤처 자본가가 자신이 워렌 버핏보다 똑똑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다가 시장이 붕괴했고, CEO로서 존경받는 위상도 그와 더불어 당장 뚝 떨어져버렸다. 인터넷 회사들도 자멸했다. 그리고 투자가들은 그들의 퇴직 계좌도 도로 보다 현실적 수준으로 내려감을 목격했다. 총체적으로, 우리는 운과 능력을 혼동하는 실수를 범한 것이다.
 

대학원에 다닐 때 로버트 버글맨이라는 교수가 비즈니스와 인생에서 극히 위험한 한 가지 관점(perspective)은 철저한 실패가 아니요, 자신이 성공했던 이유를 먼저 확실히 모르면서 성공하는 것이라는 개념을 내게 강력히 심어주었다. 성공이 판단을 흐리게 한다고 그가 지적했다. 자신 외의 다른 요소의 역할에 관해 가혹한 정직성을 갖고 일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내 리서치에 나오는 최고의 경영자를 보면, 그들은 이 개념을 약점이라는 형태가 아니라, 자기기율(self-discipline)이라는 형태로 사용한다. 즉, “어쩌면 우리는 그저 운이 좋았을 뿐이니, 우리를 그만큼 더 훨씬 강하게 만들 수 있도록 더 성실히 노력하는 것이 낫겠다. 그래야 운이 다해도 여전히 우리가 강할 수 있으며. . . ”
 

물론, 수월성이 지속되려면 겸손 뿐 아니라, 의지도 중요하다. fallure 즉, 추락할 때까지 해보는 의지 (fallure). 결과와 가능성을 구분하는 의지, 그리고 그에 따라 행동하는 의지. 올바른 파트너를 선택하고, come through 그 파트너를 위해 어려움을 극복하고 해내는 의지. 미래에나 있을 법한 등반을 오늘 등반하려는 의지, 그리고 때로는, 가능성이 낮고 결과하 가혹할 수 있을 때도 최선을 다하는 의지. 하지만 어느 정도 등반을 해본 사람은 운이 삶의 한 요소이며, 결과를 다 컨트롤할 수는 없음을 결국 배우기 마련이다. 오래 동안, 꾸준히 등반한 경력이 있는 사람은, 운이 다했을 때 대처하는 능력을 꾸준히 연마함으로서, 자신의 운을 알아보고 믿지 않아야 함을 결국 배우기 마련이다.
 

‘시니컬 피너클’을 한지 근 25년이 되었는데, 등반이 내 삶에서 여전히 중요한 자리를 차지한다. Indeed, 정말이다. 이 글을 쓰는 동안 미국 동해안에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 있다. 내리자마자 ‘퍼스트 플랫아이언’으로 느릿느릿 올라갈 생각이다. (맨해턴에서 하루를 시작하여, ‘퍼스트 플랫아이언’ 꼭대기에서 하루를 마치니, 멋진 컴비네이션이다.) 그리고 날씨가 나빠지거나 너무 늦게 도착하면, 집에 있는 실내 암벽에서 훈련하려고 한다. 어느 면으로 보든, 난 정말 행운아다! 그렇지만, ‘시니컬 피너클’에 대해 곰곰이 생각하는 동안 언젠가 어느 위대한 시인이 쓴 구절이 계속 떠오른다: “운을 지나치게 기대하는 사람은 바보다, 특히 받을만한 운을 이미 받았을 때. ”

후기: 전문적 초보자가 되는 일에 관해
(Epilogue: On Becoming an Expert Beginner)

25년을 등반한 후, 등반 코치를 구하기로 결심했다. 내 등반이 고원(plateau)에 이르렀음을 느꼈고, 40세를 훌쩍 지나서도 클라이머로서 내가 계속 성장할 수 있을지 궁금했다.

친구들은 내 생각이 이상하다고 여겼다. 오랜 세월 등반했고 어려운 루트를 수없이 많이 했는데, 클라이밍 코치에게서 뭘 배울 게 있느냐?

결국 그 질문이 틀렸음이 드러났다. 그 질문이 영원히 틀렸다는 게 아니라, 시작 시점에서는 틀렸다는 것이다. 클라이밍 코치에에게--닉 사가와 히더 사가-- 얻은 가장 중요한 교훈은 배울 필요가 있는 어떤 것이 아니라 우선 안 배워야 할 필요가 있는 어떤 것이었다.

1970년 대 말에는 어려운 루트라고 하면 급경사이거나 거의 수직인 곳이 많았다는 점에서 오늘날의 스포츠 루트와는 엄청나게 달랐다. 하강 시, 대체로 내려오는 내내 바위를 만질 수 있었다. 그와 대조적으로 오늘날의 스포츠 루트는 심한 오버행을 이루어, 흔히 수직을 넘어 10도 내지 30도, 심지어 50도 이상 튀어 나와 있다. 그런 루트에서는, 수직 30미터마다 수평으로 (몸이 뒤집힌 자세로 upside down) 12미터를 등반할 수도 있다. 뚝 떨어지면, 대개 허공 속을 휙 날며, 아무데도 부딪칠 데가 없으며, 크고 든든한 볼트가 있어 로프가 팽팽히 당겨지면 등반자를 잡아준다. 무섭긴 하나, 안전한 번지 점프와 매우 비슷하다. 그와는 대조적으로 예전 스타일의 루트에서는, 대개 바위 벽을 따라 미끄러지면서 바우에 쿵 부딪쳐, 팔다리가 부러지고 살점을 잃곤 했다 --그것도 우선은 장비가 견뎌줄 경우에만. (구식 루트는 확보물이 든든치 못한 경우가 자주 있어, 1980년대에는 흔히 볼 수 있던 크고 듬직한 볼트보다는 훨씬 더 쉽게 바위에서 빠져나오곤 했다.) 볼트를 설치한 오늘날의 루트에서는, 추락의 결과는 심각하지 않아, 원하는 대로 떨어질 수 있다. 그러나 전통적 구식 스타일 루트에서는 떨어지지 않을 수 있게 온갖 일을 해야 한다.

닉과 사가가 처음에 나와 연습을 시작했을 때, 오랜 세월 두려운 수직 등반을 해온 내 경험 때문에 추락을 두려워하고 또 반드시 살아 있도록 치밀하고 신중한 스타일이 몸에 배어 있었다. 이 보수적 태도 때문에 등반하다가 추락하면서 실패하기 (fallure) 직전의 다이내믹한 큰 동작을 요하는 오늘날의 더 힘든 루트를 오르는 내 능력이 저해되었다. 자신의 절대적 한계에 있는 요즈음의 루트를 등반하려면 수십 번 추락한 다음에 성공한다. 안 그러면, 그 루트는 자신의 한계 수준이 아니라고도 할 수 있다.

그래서 생 초보처럼, 닉과 히서가 추락하는 법을 내게 가르쳤다. 히서가 내준 과제의 하나는 “앞으로 일 년 동안, 천번은 선등자 추락을 해야 할 겁니다.”

시킨 그대로 내가 루트에서 뛰어내리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아주 작디작은 추락만 했다. 그러나 백번 가량 떨어져 본 후, 훨씬 더 큰 추락을 해보려고 애쓰며, 바위에서 휙 뛰어내리기 시작했다. 나중에는 거의 추락을 즐기게 되었다.

"자, 이제부터 힘든 부분입니다“라고 닉이 충고해주었다. ”얼마 동안은 선생님을 더 등반을 못하는 클라이머로 만들 필요가 있어요. 그래야 더 훌륭한 클라이머가 됩니다. 수직 루트를 오르기 위한 선생님이 갖고 있던 예전의 모든 요령과 테크닉이 가파르고 파워풀한 루트에서는 방해가 됩니다. 힘든 루트에서 곤경에 처하면, 선생님은 자신의 강점에 의지하는데, 바로 그 때문에 떨어집니다.“
“하지만 자신의 강점에 맞게 게임해야 한다고 늘 믿어 왔는데요”라고 내가 답했다.

“그 강점이 하려는 일에 도움이 되는 한에서 그렇죠. 그러나 선생님의 경우에는, 전에는 그렇게 도움이 되곤 했던 예전의 강점이 지금은 해로운 습관이거든요--적어도 좀 어려운 루트에서는 말이죠. 완전히 무(無)에서 새로운 강점 한 세트를 만들 필요가 있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루트를 오르기 위해 예전의 강점에 의지하지 않아야 해요. 즉, 새로 배우는 동안에는 그레이드를 몇 개 정도 떨어트려야만 한다는 말이죠.”

닉과 히서가 시범을 보여주려고 나에게 가파른 문제를 해보도록 시켰고, 내가 안정된 자세를 취하면서 (내가 늘 배워왔듯이 컨트롤을 유지하며) 대여섯 동작을 해보았다. 허나 내 신중한 등반 스타일로 하니, 힘이 다 빠지고 말았다. “그게 아니고요!”라고 히서가 야단쳤다. “닉처럼 하세요.” 닉은 같은 홀드를 잡고, 발을 홀드에서 휙 떼어, 큰 원호를 그리는 동작으로 한 발을 휙 벽 위로 올려, 크고 다이내믹한 동작으로 몸을 위로 홱 들어 올렸다. 카아! 내가 오르락내리락 하던 그 동일한 3미터를 그는 순식간에 올라갔다. 그는 높은 철봉에서 이리저리 스윙하는 체조선수처럼 등반했고, 그 반면에 나는 사다리를 기어오르는 어설픈 일꾼처럼 등반했다.

얼마 동안, 내 등반이 정말로 나빠졌다. 그러나 그 후 새 테크닉이 척 이해되기 시작했고--순전히 새 스타일과 마음가짐의 덕으로--다시 전문가가 되는, 발전의 기쁨을 느꼈다. 40대 중반인 내가, 십대 이후 느끼지 못했던 등반 열정을 다시 느꼈다. “일보 전진을 위한 일보 후퇴” 때문에 풀이 죽지 않고, 새 에너지를 느꼈다. 어떻든 큰 플라이휠(flywheel)을 새 방향으로 돌게 하듯, 우선은 그 플라이휠이 처음 움직이게 하기 위해서만도 연습을 많이 해야 했다. 그러나 그 플라이휠의 추진력이 점점 커지기 시작하면서, 그 추진력(momentum)이 갑자기 비약적으로 좋아지는 희열을 느꼈다. 한 바퀴에서 두 바퀴, 두 바퀴에서 네 바퀴, 네 바퀴에서 여덟 바퀴, 여덟 바퀴에서 32바퀴, 그리고 64바퀴, 128바퀴, 그리고 1분에 천 바퀴로. 발전하는 느낌이 동기부여라는 내연 엔진 같은 역할을 했고, 그로 인해 더 트레이닝을 잘하게 되었고, 또 그 때문에 더 많이 플라이휠을 회전시키게 되었고, 또 그로 인해 더 동기가 유발되었고, 또 그로 인해 더 나은 등반을 하게 되었고, 또 더 많이 동기유발이 되는 식으로 진전되었다. 그 발전 과정 자체가 바로 그 모든 것의 포인트가 되었다.
내가 보기에 내 등반 친구들은 닉과 히서의 프로그램에 사실상 적응치 못하는 듯 했다. 더 나은 클라이머가 되기 위해 시도해보라고 자꾸 친구들에게 권했다. 그러다가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여러 해 동안 등반해왔고, 이미 자신을 상당한 전문가로 생각하고 있어, 내 친구들은 다시 초보자가 되는 것이 거북했고. 새 테크닉을 해보기를 주저했다. 그래서 친구들은 자신의 강점에 안주하면서, 계속 높은 수준에서 등반하긴 했으나, 다시 초보자가 되었더라면 등반할 수 있었을 수준보다는 훨씬 낮은 수준에 머물고 말았다.

다니엘 부어스틴이, 더 디스카버러(The Discoverers)라는 그가 쓴 클래식한 책에서, 인간의 발전을 가로막는 큰 장벽은 무지가 아니라, 알고 있다는 환상과 “전문적 기술”로의 몰입이라고 주장한다. 최고의 발견자들은, 부어스틴에 의하면, 가장 똑똑하거나 가장 재능이 뛰어난 사람이 아니라, 그 분야에 있는 전문적인 초보자(expert beginner)이거나 전문적인 초보자로 남아 있을 만한 자기수양이 되어 있는 사람들이다. 전문적 초보자는 세상이 돌아가는 실상을 더 명확히 본다. 왜냐하면 그들이 당연히 알리라고 사람들이 믿는 “지식”으로 인한 부담이 덜하기 때문이다. 과학자의 정확성과 어린이의 호기심을 필요로 하는, 여하한 창의적 노력이나 창업자의 노력에 대해서도 이 말이 타당하다.

동일한 패턴이, 데이빗 패커드에서 샘 월튼에 이르는, 내 리서치에서 연구했던 가장 위대한 회사의 리더에게서도 나타난다. 월마트 창업자인 샘 월튼은 자신을 소매업에 관한 최고 권위자가 아니라, 그의 특수 기술을, 평생 공부하는 학생으로 보았고, 늘 질문을 하고 기회가 있을 때마다 배우려고 했다. 언젠가 브라질의 한 기업인이 내게 말한 바에 의하면, 그가 남미에서 할인 소매점 체인을 산 후, 10명의 미국 소매업계 CEO에게 만나자는 약속을 청했는데 수락한 사람은 월튼 뿐이었다고 한다. “소매업에 대해 잘 모르므로, 그 일을 아는 경영자와 대화를 하고 싶었다”고 브라질 기업인이 말했다. “대부분의 CEO는 대꾸조차 안 했다 그런데 샘 월튼은 ‘좋아요, 오세요’라고 말했다. 그 브라질 기업인이 나중에 알게 된 것은 월튼이 자신을 학생으로 그리고 그 브라질 대표단을 선생으로 보았다는 점이다. ”샘이 주로 우리에게서 배우는 것에 관심이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월튼이 브라질에 관해 수많은 질문을 우리에게 퍼부었기 때문에 겨우 이틀 후에야 드디어 실질적인 질문 하나를 물어볼 찬스를 갖게 되었다. 이 사람이 샘 월튼인 줄 몰랐다면, 아마 완전한 초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자기 혁신(Self Renewal)’이란 책의 저자이고 (1970년 미국에 결성된 시민 단체로, 국민의 요구·호소에 따르는 행정 개혁을 목적으로 한) ‘코먼 코즈(Cómmon Cáuse)’의 창시자인 고(故) 존 가드너는 사람들이 (배 밑에 달라붙는) 삿갓조개나 따개비를 쌓이게 하기 때문에 삶과 경력 상으로 정체한다고 믿었다. “최고의 작품은 대개 생애의 초기에 오지, 나중에 오지 않음을 알게 될 것이다”라고 그가 내게 말한 적이 있다. “그래서 평생에 걸쳐 최고의 작품을 만드는 최고의 방법은 그 도중에 여러 번 새 출발을 하는 거다.”

어쩌면 이것이 내 리서치 실험실을 내가 다녔던 초등학교 1학년 교실에 차리고 싶다는 본능을 강하게 느낀 이유다. 내가 아무리 전문가가 되더라도 보다 높은 수준의 완숙한 경지에 이르는 유일한 길은 자신의 전문 지식과 기술을 놓아 버리고 완전히 다시 초보자로서 배우는 것임을 상기할 수 있도록 말이다.

물론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이것이 쉽지 않다. 서열 속에 있는 자신의 위치를 좋아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도 믿듯이, 비교하는 것이 현대 생활의 큰 죄악이라면, 서열(pecking order)보다는 자신의 가능성에 보다 집중할 필요가 있다. 교실로서의 등반에서 내가 배운 아마 가장 큰 교훈은, 남과 비교해서 얼마나 잘하느냐가 아니라, 자기 자신 그리고 자신의 가능성에 비교해서 얼마나 잘 하느냐가 중요하다는 것이었다. 또 그럼으로써 다시 초보자가 되어야 한다면, 받아들여야 한다.
 

원문 읽기: Hitting the Walls: "Vertical Limits Aren't"

 

www.jimcollins.com

S. H. Lee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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