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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로 토레에 관한 거짓말과 훼손된 성스러움
작성자: 관리자   등록일: 2009-04-28 10:24:22   조회: 3069  


세로 토레에 관한 거짓과 훼손된 성스러움

Cerro Torre - The Lie and the Desecration

By Jim Donini

 

서쪽에서 본 세로 토레와 (우측의 가장 높은 봉) 토레 에거(중앙). Photo © Mark Westman.

 

지난 40년 간, 7대륙 모두에서 내가 등반을 해왔다. 그 기간 중 내가 명확히 느끼게 된 점은 이제까지 내가 만나본 것 중 세로 토레가 가장 기막히게 아름다운 산이었다는 것이다. 연한 갈색 화강암 첨봉이 얼음이 펼쳐진 곳 위로 수직 1마일이나 솟아 있고 그 별 세계의 얼음 버섯이 그 정상을 덮고 있다. 세로 토레는 소용돌이치는 폭풍 구름 또는 희소한 맑은 날에는 강렬한 오랜지 빛 알파인 글로우(alpine glow)에 따라 늘 변모하는 무드가 있는 산이기도 하다,

세로 토레에는 또한 화려한 역사와 그에 따르는 문제도 있다. 1958년, 당대의 가장 훌륭한 클라이머인 월터 보나티가 세로 토레 남면의 희망의 안부(Col of the Hope)를 등반하고, 얼음 버섯이 형성되어 있는 정상 부위는 등반 불가라고 공언했었다. 일 년 후, 세사레 마에스트리가 토니 에거 및 지원 팀과 와서 초등을 시도했다. 폭풍이 지속된 6일 동안, 토니 에거와 함께 세로 토레를 등정했다고 마에스트리가 주장했었다.

하산 중 눈사태로, 밑에 있는 빙하까지 에거가 쓸려 내려갔고, 새로 내린 폭풍설이 그를 덮어, 그들의 단 하나의 카메라와 함께 그의 사체가 사라지고 말았다. 그의 성공에 환호작약한 마에스트리가 자신의 성공에 대해 대단히 뽐냈고  그의 라이벌인 보나티를 심하게 폄하했다. 그 전년도에 보나티가 '희망의 안부'를 오른 것에 관해 “희망은 약자의 무기이며, 오직 정복의 의지만 있을 뿐이다”라고 마에스트리가 말했다. 지금은 지나칠 정도의 세계적인 오만으로 보이는 태도로, 그가 오른 이 산의 오른쪽 안부를 정복의 안부(Col of Conquest)라고 그가 명명했었다.

 

1975년 토레 에거 어프로치 시 크레바스를 건너는 존 브랙. 그 모든 유품이 발견된 그 삼각형 빙원에 이르는 수직 구간을 이 사진이 보여주고 있다.  “소위” 비교적 쉽다는 그 구간이 그 트래버스 지점 그리고 결국은 ‘정복의 안부’까지 이른다, Photo by Jim Donini

그 등정에 관한 의심이 굉장히 컸었다. 그런 악천후에서 그런 규모의 알파인 스타일 등반은 1959년의 기술 수준을 감안하면 있을 수 없는 듯 보였었다. 1970년, 마에스트리가 진짜 군대와 함께, 컴프레서로 박는 볼트 건(bolt gun)을 잔뜩  갖고 와서 포위 공격 방식으로 그 남동 릿지 위로 볼트를 박으며 올라가자, 열화 같은 항의의 불길이 점화되었다. ‘마운틴 매거진’에는 “신성한 산의 모독”이라는 헤드라인으로 roar 질타했다. “어떻게 1959년에 그런 완벽한 impeccable style 스타일로 세로 토레를 등반했다고 주장했던 사람이 다시 되돌아와 정상까지 볼트를 박으며 올라 갈 수 있단 말인가?” 한편, 특히 이태리 내에는, 마에스트리의 옹호자들도 있었다, 세사레는 돌로미테에서 상당한 초등 기록을 갖고 있었고 에거는 당대 최고의 얼음 등반가의 하나였었다. 당시 캠프 4에서 이런 이벤트를 보는 젋은 클라이머였고 4분지 3은 이태리 사람인 필자는, 등반가의 말은 성스럽다고 믿고 있어, 마에스트리의 말을 지지했었다.

1974년 내가 파타고니아로 처음 갔을 때, 토니 에거의 사체를 15년간이나 가두어 두었던 빙하가 녹으면서 그의 사체가 출현한지 얼마 안 되어, 그의 유품을 내가 우연히 보게 되었다. 토니 에거를 추모하기 위해 명명된, 세로 토레 바로 옆에 있는 봉을 오르려는 생각에 내가 집착하게 되었다. 1975년 당시 토니 에거 봉은 아직 미등 상태였고 여전히 서반구에서 가장 등정하기 힘든 봉이라고 많은 사람이 여기고 있다.

 

  빙원 밑에서 발견된 마에스트리와 에거가 남긴 나무 “쐐기의 하나. Photo by Jim Donini

 

 

 

 

 

 

 

 

 

 

 

 

카메라를 마주보고 있는 세로 토레 동남 릿지, 즉, 컴프레서 루트.  Photo © Christof Berger.

1975년, 존 브랙, 제이 윌슨과 내가 토레 에거 초등을 시도하고자 파타고니아로 갔다. 우리의 계획은 마에스트리와 에거의 발자취를 따라 ‘정복의 안부’까지 간 다음, 그 마지막 1400피트의 암탑을 올라, 토레 에거 정상의 얼음 버섯에 이르는 것이었다.

‘정복의 안부‘까지 이르는 등반 루트에 세 구간이 있는 듯 보였는데, 1천 피트의 수직 등반을 하여 눈에 잘 뜨이는 삼각형 빙원(氷原)에 이르고, 그에 이어서 비교적 경사가 낮은 1500피트의 등반 구간, 그리고 끝으로 그 안부로의 400피트 트래버스 구간이 그것이다. 밑에서 볼 때, 그 트래버스 구간은 홀드가 없고 수직으로 보였다. 젠장, 마에스트리와 에거가 1959년에 그걸 했다니, 요세미티 경험이 있는 우리는 그걸 해낼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었다.

이 루트는 역사 속으로의 여행으로서 시작되었다. 그 삼각형 빙원까지의 1천 피트에서 장비 유품의 수가 너무 많은 점에 우리가 압도당했다. 로프 쪼가리, 피톤, 나무 쐐기, 그리고 이상한 볼트를 거의 매 피치에서 볼 수 있었다. 그 빙원에 이르는 그 마지막 피치는 거의 5피트마다 피톤과 카라비너에 클로브 히치(clove-hitched)로 묶인 빛바랜 낡은 로프로 완전히 고정되어 있었다. 이 피치의 끝, 즉, 그 빙원 바로 밑 그리고 벽 위 약 1천 피트 지점에서, 마에스트리와 에거가 남겨둔 장비 더미를 우리가 발견했다. 폭풍설의 조짐이 보여, 우리가 빙하까지 쫓겨 내려갔고 그 다음 6주 간 끊임없이 폭풍설이 불어대어 우리가 찾아낸 이상한 물건들에 관해 숙고할 수 있었다.

 

아무 것도 없었다. ‘정복의 안부’로의 트래버스 지점 바로 밑. Phtoo by Jim Donini

드디어 날씨가 좋아지자, 우리가 도로 올라가서 ‘정복의 안부’까지 갔고, 드디어 1976년 2월 23일에 정상까지 갔다. 그 첫 1천 피트에서 백여 개의 유류품[遺留品]을 본 후 그 안부까지 이르는 나머지 1500피트에서 전혀, 아무것도, nada 찾을 수 없어 우리는 놀랐다. 하강 행커도 고정된 장비도, 전무했다. 의심이 나고, 심지어 저주하는 말까지 damning 했으나, 마에스트리가 거짓말했다는 절대적인 증거는 아니다. 그 케이스를 돌이킬 수 없이 결정짓는 것은 seal 대로 마에스트리가 그 안부까지 이르는 루트를 밑에서 보이는 대로 설명 했는데, 실제 등반은 그의 말과는 상당히 달랐다는 것이다. 그가 했음이 의심의 여지가 없는 그 첫 1천 피트를 그가 <어렵다>고 이야기했었는데, 실제로 그렇다. 안부 쪽으로 트래버스 하는 구간까지의 그 1500피트의 비교적 낮은 경사 구간을 그가 <쉽다>고 말했고, 그 안부까지 트래버스 하는 홀드가 없어 보이는 구간을 <힘들며, 약간 인공적인 도움을 요한다>고 그가 공언했었다. 그 반대가 진실이다: 트래버스 구간까지의 등반은 보이는 것보다는 더 힘들며, 안부로의 트래버스는, 그 꼭대기에 있기 전에는 볼 수 없는 감추어진 바위 턱이 있어, 훨씬 더 그 루트에서 가장 쉬운 부분이다. 마에스트리가 1959년에 세로 토레를 등반하지 않았다고 나는 확신한다. 또한 그가 ‘정복의 안부’까지도 못 갔다고 나는 믿고 있다.

왜 내가 왜 이 글을 썼느냐? 누구나 마에스트리가 거짓말 한 걸 알고 있지 않은가? 분명히 그렇지 않다. 금년 5월의 트렌토 필름 페스티벌이 세로 토레 역사에 관한 프로그램을 hosting 벌일 예정이다. 금년의 페스티벌이 마에스트리의 모험 50주년인 점을 고려하면, 마에스트리가 과분한 신뢰를 받아도 놀랄 일이 아닐 것이다.

 

‘정복의 안부’로 이르는 감추어진 바위 턱을 보여주는 토레 에거에서 보는 경치 (죤 브랙이 전면에 있음). Photo by Jim Doni

내가 왜  관심을 갖고 있는가? 세로 토레는 이 지구의 참으로 특이한 봉의 하나이며 클라이머의 설명을 믿는 것이 알피니즘의 핵심적 이슈이기 때문이다. 십여 년 남짓에 걸쳐 마에스트리가 알피니즘 역사 상 가장 큰 날조 행위를 저질렀고 또한 컴프레서 루트로 세로 토레의 존엄성을 훼손시켰다. 이 루트에는 진정한 등반을 하는 피치가 18개가 있지만, 볼트 따기 등반을 하는 그 7개의 피치로 인해 세계에서 가장 힘든 비아 페라타(via ferrata)가 되고 말았다. 날씨로 인해 등정보다는 생존을 택할 수밖에 없었음을 나도 알아야 했다. 세로 토레는 더 나은 대접을 받아야 한다. 만일 (세계 최고의 얼음 루트의 하나인) 그 서벽이 가장 쉬운 루트이었다면 - 아마 컴프레서 루트가 없었어도 그랬을 것이지만 - 세로 토레는 분명히 그 난이도와 그 아름다움이 조화를 이루는 산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www.climbing.com 짐 도니니

S. H. Lee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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