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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이 가르쳐준 삶의 교훈
작성자: 관리자   등록일: 2004-01-06 21:14:58   조회: 4976  


 

암벽 등반을 통해 배운 리더쉽 교훈


Leadership Lessons of a Rock Climber

산은 일과 인생의 최고의 교실


30년 이상 열정을 갖고 암벽 등반을 해온 사람으로서, 삶과 직업에 관한 나의 전반적 접근 방법은 클라이머로서의 나 자신의 발전과 불가분의 상관 관계를 이루어 왔다. 내가 처음 등반을 시작하게 된 것은 계부가 억지로 나를 등반 강좌에 등록시켰던 십대 시절이었다. (“차라리 공부를 하겠어요” 하고 내가 엄살을 피웠었다.) 그러나 그 첫날이 끝날 때 내 평생 불타는 열정을 바칠 대상 중의 하나를 발견했음을 나는 알게 되었다. 콜로라도 볼더 시에서 자라났으므로, 세계적인 훌륭한 등반 중심지 중의 하나가 바로 우리 뒷마당에 있었고, 세계에서 가장 훌륭한 클라이머 몇 사람을 사부로 만날 수 있었다. 고등학교 3학년이었을 때 스탠포드 대학을 방문한 후, 대학 선택에 관해 내가 신바람이 나서 부모님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이 대학에는 한 수업 시간과 다음 수업 시간 사이에 등반할 수도 있는 정말 멋진 사암(sandstone) 건물이 있네요!”

대학 1학년 시절의 어느 날, 대학의 주 정원에 있는 철학과 건물 위에서 신 루트를 등반하고 있는데, 발을 질질 끌며 내 뒤로 누가 다가오는 소리를 들었고, 이어서 죤 고힌이라는 명예 교수의 목소리를 들었다. “이런, 콜린스 군이로군. 실존적인 딜레마의 궁극적인 해결책이 이거라고 학생은 생각하나?” 나는 이 루트에 Kant Be Done 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내게 있어, 암벽 등반은 ‘최고의 교실’이 (the ultimate classroom) 되었다. 사업과 경영과 리더쉽과 과학적 연구 등을 포함한 삶의 모든 면에 적용될 수 있는 교훈이 있는 교실 말이다. 등반이라는 스포츠는 자신의 실수로부터 배울 두 번째 기회를 항상 가질 수는 없는 스포츠다 - 죽음이 학습 과정을 멈출 수 있다. 그러나 나의 실수들에도 불구하고 다행히 나는 살아남았고 등반 밖의 삶과 일에 적용할 수 있는 몇 가지 중요한 교훈을 배우게 되었다.

교훈 1
실패가 아니고, 한계에 도전하는 등반을 하라. : 정상에 이르지 않고 성공하기
(Climb to Fallure, not Failure: How to Succeed Without Reaching the Top)

역주: 필자는 failure라는 말 대신 fall과 failure를 합성하여 그 나름의 신조어 fallure란 단어를 만들었습니다. 실패라기 보다는 , 자신의 한계까지 시도하다 추락함을 강조하는 의도로 보입니다.

친구 매트와 나는 굽어진 산길 모롱이를 걷고 있었는데, 내가 도중에 우뚝 멈추어 아름답게 펼쳐진 바위를 보았다 - 매끈하고 약간 오버행을 이루고 있으며, 은빛 화강암 벽 한 가운데를 쩍 가라는 손끝만 걸리는 크기의 가느다란 실금이 있는 바위였다. 15 미터 위에 있는 석영암 손 홀드를 가리키며, “왜 이 루트를 ‘수정의 공‘이라고 (Crystall Ball) 내가 이름 지었는지 알겠지” 하고 매트가 말했다,

우리는 로프를 매었고, 내가 “온 사이트” 등정을 목표로 그 루트 위로 힘차게 출발했다. (온 사이트는 그 루트의 동작에 관한 아무 사전 정보 없이 그리고 전혀 인공적인 도움 없이 제일 처음 시도에 그 등반 루트를 떨어지지 않고 선등으로 오르는 것을 말한다. 다른 클라이머들이 그 루트의 어려운 부분을 어떻게 등반하는지에 관해 이야기해주지도 않았고, 다른 사람이 그 루트를 하는 것도 본 적이 없어야 한다.) 온 사이트 기회는 단 한번이다. 일단 등반을 시작한 다음, 실수하여 로프에 매달린 채 떨어지면 영원히 그 기회를 잃고 만다.

공처럼 생긴 그 수정 홀드 3미터 밑에서, 매끄럽고 아주 작은 그 자갈들 위에서 발이 빠지면서, 발이 이리 저리 밀리기 시작했고, “손가락에 실리는 무게가 조금만 더 작다면....” 하고 속으로 생각하며, 작은 엣지를 (edge) 엄지로 감아쥐었다. 그 온사이트 시도의 아드레날린이 모든 홀드를 지나칠 정도로 꽉 쥐게 만들었고, 죽을 힘을 다해 나를 매달리게 만들었다. 마치 너무나 불안한 달리기 선수가 처음 800 미터를 지나치게 빨리 달려 나가듯이 말이다.

“숨 쉬어, 짐. 긴장 풀고.” 맥스의 목소리가 잠시 나를 진정시켰다.

엄지를 훅킹하고 (hooking) 손가락을 쉬어주면서, 조금 평정심을 되찾았고, 내 호흡을 안정시키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내 마음 속엔 끊임없이 잡념이 일어났다: “여기서 제대로 못하면, 돌이킬 수 없어...... 그리고 제대로 해내도, 그 수정 공까지 올라갈 만한 파워가 있을는지 자신이 없어..... 그리고 그 수정 공까지 간다 해도 다음 확보 지점에 로프 클립을 못 할 거야...... 얼마나 멀리 떨어질까......?".

재깍 재깍 재깍. 내가 망설이는 동안 시간이 흘러갔다.

“OK, 매트, 나 갈께.”

오른 손은 사이드 풀 홀드에 (side pull). 왼발은 그 엣지에.

“어....어.” 예상이 틀렸다. 왼손으로 그 엣지에 갔어야 했는데! 오른손을 위로 뻗고 왼손을 그 사이드 엣지 (side edge) 위로 움직이게 해줄 수 있는 어떤 엣지나 작은 돌기나 또는 주름 같은 그 어떤 것 - 그게 무엇이 되었든 간에 - 그것을 찾아 내 몸을 왼쪽으로 움직였다. 아래와 옆을 향하고 있는 - 당기는 동작을 하기 좋은 방향이 아님 - 한 개의 작은 엣지를 내 오른손 손가락들로 만지게 되었다. 이제 성공 확률은 20% 미만이었다. 그 동작을 시도하더라도 추락하고 말 것이 거의 분명했다. 9 미터 정도 추락이다. 설사 내가 간신히 용을 쓰고 위로 올라간다 해도, 더 높이 올라갈수록 다음 볼트를 ”클립“ 도 하지 못할 것이고, 결국 추락 거리만 점점 커질 것이었다. (‘클립’이라는 것은 안전 조치용 볼트에 매달린 카라비너에 로프를 거는 것을 의미한다.)

"“떨어진다!” 라고 내가 매트에게 소리친다.

“안 돼,” 그가 큰 소리로 답한다. “거기 크리스털까지 겨우 세 동작 남았어. 거기서 쉴 수 있어.”

“나, 떨어져!” 내가 소리친다.

그리고 나는 손을 놓고, 잘 제어된 추락 속에서 로프에 매달리고 만다.

로프에 약 10분 간 로프에 매달려 있으면서 기운을 회복한 다음, 다시 바위로 스윙하여 붙고, 그 홀드가 있는데까지 다시 올라갔고 결국 그 끝까지 등반했다. 그러나 물론 그건 인정받지 못한다. 깨끗하게 온사이트를 못 한 것이다. 나중에 그 날 중으로 한 번에 밑에서 꼭대기까지 그 루트를 완등했다 해도 - 보통 기준으로는 성공이라 하겠지만 - 나는 실패다. 그 등반에서의 실패가 아니라, 내 마음에서의 실패인 것이다. 전력을 다해야 하는 순간에 직면했을 때, 그 결단의 순간에, 온사이트 시 과감하게 시도해야 할 순간에, 그만 나는 포기하고 말았다. 실패를 (failure) 향해 나아갔지, 나의 도전하다 추락한 것이 (“fallure") 아니었다.


실패 그리고 또 실패. 그 차이는 미세하나, 세상의 모든 차이도 그러하다. 한계에 도전하다 추락했을 때 (in fallure), 그 루트 위로 올라가진 못하나, 결코 포기하지는 않는 것이다. 한계를 향한 도전에는 추락이 있고: 실패 속에는 포기가 있다. (In fallure you fall; in failure you let go.) 추락을 무릅쓰고 한계를 향해 나아가는 것은 (fallure) 위로 올라가기 위해 전심전력을 다함을 뜻한다 - 성공 확률이 20%, 10%, 심지어 5% 이하라도 말이다. 아무 것도 예비로 남긴 것이 없는 것이다. 정신적 또는 신체적인 자원을 남김없이 모두 갖다 쓰는 것이다. 실패를 무릅쓴 그 한계로의 도전 속에서는 (in fallure), 결코 심리적으로 스스로 포기하지 않는다: “사실, 난 최선을 다하지 못했어......최선의 노력을 기울여 했었어야 했는데 말이야.” 라고 결코 말하지 않는 것이다. 추락을 무릅쓴 한계로의 도전 (fallure) 속에서, 두려움과 고통과 젖산과 불확실성에도 불구하고, 항시 자신의 최선을 온전히 발휘한다. 외부 관찰자에게는 실패와 한계까지 도전하다 추락한 것이 (failur and fallure) 비슷하게 보인다 (두 경우 모두 허공을 날아 떨어진다), 그러나 내면적으로 겪는 그 도전하다 추락한 경험은 (fallure) 보통 실패의 경험과는 전혀 다르다.

자신의 진정한 한계를 알 수 있는 길은 실패가 아니라, 자신의 한계에 도전하다가 추락해보는 방법 밖에 없다 (fallure). 그 수정 알까지 (the crystall ball) 내가 올라갈 확률은 20% 이내다. 그러나 만일 내가 포기하면 확실히 알 길이 없다. 어쩌면 힘이 좀 남아 있을지도 있고; 동작 하나를 더 할 수 있는 파워가 남아 있을 수도 있고, 또 나 자신도 놀라게 될지도 모른다. 또는 어쩌면 - 이것이 사실로 드러났다 - 다음 홀드가 눈에 보이는 것보다는 더 좋은 홀드일 수도 있다. 바로 그게 문제다. 온사이트 시 - 인생에서와 마찬가지로 - 다음 홀드가 어떤 느낌일지 알 수 없다. 온사이트 시 집중력의 100% 발휘가 그렇게도 어려운 이유는 바로 이 불확실성 - 홀드와 동작과 로프 클립 능력의 - 때문인 것이다.

내 인생의 사부(師傅) 중의 하나인 Sara Litle Trunbull이 Corporate Design Foundation Conference에서 행한 그녀의 연설문에서 인용한 글이 써 있는 벽걸이 한 개를 내게 주었다.

If you don't
Stretch
You don't know
Where the edge
Is

시도해보지 않으면
어디가 한계인지
모른다.

스탠포드 대학의 '변화 과정 연구소' (the Process of Change Laboratory) 이사인 턴불은 (Turnbull)은 코닝과 3M 같은 대 회사의 디자인 컨설턴트로 탁월한 경력을 쌓아왔다. the Corporate Design Foundation은 턴불이 “제품 디자인 개발 분야에서의 CEO들의 비밀 무기”라고 설명했다. 그녀가 한 가장 훌륭한 디자인 중의 몇 개는 그녀가 실패한 컨셉의 벼랑 끝에 있었지만 포기하지 않았을 때 왔다고 언젠가 턴불이 내게 말해 주었다.

물론, 거의 실패 직전이었던 그녀의 많은 디자인들이 - 사실 대부분의 - 결국 실패로 끝났다. 그러나 가끔은, 포기하지 않음으로서, 그녀가 완전히 새로운 수준으로 자신을 밀어 부칠 수 있었고, 특별한 것이 생겨나곤 했다. “돌파구가 생기는 것이 바로 그때지요” 라고 그녀가 내게 말했다. “실패의 벼랑 끝에 있어야만 하며, 그런 다음 스스로도 놀라게 됩니다. 그저 다른 수준으로 가는 거보는 거죠. ” 한계까지 도전해보는 겁니다. 실패하는 게 아니고요. (Fallure, not failure.)"

훌륭한 기업들을 연구하면서, 우수한 경영자들이 이 개념을 얼마나 직관적으로 잘 이해하고 있는지 알게 되었다. 킴벌리 클라크 사의 CEO인 다윈 스미스가 그의 회사의 대 도약을 위해 도전이냐 실패냐의 의사결정을 내렸다. 지난 100년 간 킴벌리 클라크 사는 그저 전통적인 제지 공장으로서 활동하는 것을 그 사업의 주종으로 삼으며, 평범하게 지내왔다. 스미스는, 이 회사의 위대한 성장은 종이를 소재로 한 소비재 분야에 있음을 깨달았다. 이 분야에서, 코카콜라나 제록스 같이 하나의 전형이 되다시피한 브랜드가 된, ‘클리넥스’라는 방계 사업체가 있었다. 병사들이 후퇴할 여지를 남기지 않으려고, 상륙 한 다음 배를 태운 장군처럼, 스미스는 오랜 전통을 지닌 제지 공장들을 팔기로 결정했다. 그는 심지어 위스콘신 주 킴벌리에 있는 공장 마자 팔아버렸고, 그 모든 수익금을 소비재 사업에 투척하여, 스콧 페이퍼 그리고 프록터 앤드 갬플 같은 경쟁사들과 대접전에 들어갔다. 월스트리트는 그를 조롱했고, 기업 언론과 방송 매체는 그 조치를 어리석다고 했고, 분석가들은 무자비한 평을 했다. 그러나 결국, 스미스의 판단이 효력을 보였고, 킴벌리-클라크가 세계 제일의 종이 소재 소비재 회사가 되었다.

등반 용어상으로 보면, 스미스는 “테이크” (“take") 능력을 제거한 셈이다 (”테이크“는, 크리스털 볼에서 내가 실패할 때 내가 매트와 했듯이. 빌레이 보는 사람이 로프를 팽팽하게 잡아주어 잘 콘트롤 된 상태로 추락하게 잡아달라고 하는 말임. "tension"이라고도함). 물론, 소비재 사업에서 킴벌리-클라크가 성공하리라는 보장은 없었으나 - 어쩌면 엄청난 선등자 추락이 있었을 수도 있다 - 한계까지 전력을 다 기울이는 것만이 성공에 이르는 유일한 길임을 스미스는 알고 있었다.

이제 나는 인생을 일련의 선택, 추락을 무릅쓴 한계로의 도전 또는 실패 사이의 선택으로 본다 (going to fallure or failure). 온사이트 시도처럼, 인생에서의 다음 홀드는 분명치 않고 애매하다. 바로 그러한 애매함이 우리로 하여금 전력을 다 기울여 시도하지 못하게 가로 막는다. 정신적으로 패배하는 것이다. 우리는 놓아버려야 한다. 우리는, 대단히 큰 추락을 하는 게 아니라, 콘트롤을 유지하며 멋지게 추락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힘든 스포츠 클라이밍과 마찬가지로, 인생에서 실패를 무릅쓰고 한계로 향해 나아가는 것은 (fallure) 두렵긴 하나 위험하진 않다. 사업을 시작하거나 책을 출판하거나 또는 멋진 신 디자인을 시도하든 간에, 실패가 곧 죽음을 의미하는 경우는 드물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점은 자신의 진정한 한계를 찾는 유일한 방법은 실패를 무릅쓰고 한계까지 시도해보는 것이지 (fallure), 실패가 아닌 것이다.

만 45세가 되니, 이제는 만 20세일 때처럼 내 몸이 힘차게 올라가도록 허락해주지 않는다. 그러나 그 동안 체력 면에서는 줄어들었지만 정신력 면에서는 나아진다는 것을 배웠다. 그래서 나는 여전히 오버행 바위에서 운동하며 나의 한계까지 가보려고 노력하고 있다 (trying to go to fallure).

나는 심지어 정상에 이르렀느냐 하는 관점 보다는 정신적 노력의 질이라는 관점에서 “성공” 개념을 새로이 정의내리기까지 했다. 등반하러 갔던 최근의 어느 날, 나는 단 한 개의 루트도 끝까지 오르지 않았다. 단 한개도. 그래도, 그 날은 내가 가장 성공적으로 등반한 날에 속했다. 왜냐 하면 나의 모든 시도에서 나는 한계까지 나아갔기 때문이다 (went to fallure). 그 날, 내 마음의 강인함을 느꼈기 때문에 집으로 가는 동안 기분이 좋았다. 약해진 듯 한 느낌을 가졌던 다른 날들과 비교해서 말이다. 왜냐 하면 결국, 등반은 바위 정복 보다는, 스스로를 정복했느냐에 관계가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바로 이것이 한계로의 도전 (fallure) 인 것이다. 실패, 실험, 추락 한계에서의 추락

물론, 한계로 도전하다 추락하는 등반이 (climbing to fallure) 용감한 일이 되지 못하고 그저 멍청한 일이 될 때도 있다 - 이것이 다음 가르침으로 우리를 인도한다.

교훈 2
결과와 가능성을 구별하라: 진정한 리스크를 앎으로서 성공하고 살아남기

(Separate Probability From Consequence: How to Succeed--and Stay Alive--by Understanding the True Risks)

1975년 여름, 데이빗 브레셔라는 젊은 클라이머가 볼더 시 남쪽에 있는 한 절벽의 바닥에서 솟아있는 일찌기 등반된 적이 없는 아름다운 벽을 발견했다. 여러 해 동안 이 곳을 오르겠다고 심각하게 생각한 클라이머가 없었다. 이 암벽 등반지의 어려움에 문제가 있다기 보다는 자연적인 확보물이 없다는데 있었다. 브레셔가 보니, 와이어에 매단 너트를 걸 만한 크랙이 없었는데, 그가 등반하던 시대는 드릴로 확장 볼트를 바위에 박아서 확보물을 설치하는 것이 인정받기 이전이었다. 그 벽은 5층 높이이었고, 자갈이나 날카로운 모서리가 없었으며, 비교적 커다란 홀드들이 있는 85도 오버행 바위였다.

브레셔는 로프를 매고, 너트 몇 개를 갖고 그 루트 위로 향했다. 어려운 부분을 지난 후 위쪽에 보이는 포켓들 중의 하나에 그 너트를 꽂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15 미터 지점에서 그는 공포를 느꼈다: 나머지 부분이 시작 부분 보다 훨씬 어려울 것 같았고, 너트를 박을 곳도 없었다. 그 바위는 수천 년 동안 위에서 흘러내린 물로 닦여 있었고, 흐르는 손 홀드에는 쥘 수 있는 각진 모서리가 전혀 없었다. 추락하면, 큰 바위덩이들이 널려 있는 바닥까지 18 미터를 곤두박질할 형편이었다. 1초의 제곱 당 32 피트의 속도이면 (32 feet per second squared), 중력 상수 20 G의 힘으로 거의 시속 50 마일로 그 바위덩어리들이 깔려있는 바닥으로 충돌하게 된 것이다! 클라이머 1명 사망.

이것을 위험 상황이라고 할 수 있을까?

아마 ‘위험’이란 말이 갖는 의미에 따라 답이 달라질 수 있다.

데비잇 브레셔에게는 그것은 위험 상황이 아니었다. 사실, 그 추락의 결과는 가혹하나, 추락의 확률은 제로였다. 데이빗은 전성기를 맞이한 능력 있는 클라이머이어서 그 루트는 - 그에게는 - 풀어야 할 하나의 퍼즐이었지 특별히 어려운 퍼즐은 아니었다. 그것은 마치 뉴욕 타임즈 신문의 수요일 판에 나오는 세계적인 수준의 크로스워드 퍼즐 (crossword-puzzle) 전문가에게, 이 퍼즐을 제대로 하지 못하면 18 미터 절벽 아래로 당신을 떨어트려서 죽인다는 지시 사항과 함께 (상당히 어렵긴 하나 해낼 수 있는 정도인) 크로스워드 퍼즐을 제시하는 것과도 같다.

바닥까지 18 미터 추락할 가능성이 브레셔의 뇌에 영향을 미쳤다면, 그는 죽었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는 살았다. 그는 추락의 가능성과 결과를 분리할 수 있었고, 고도의 집중력을 기울인 정확성을 (focused precision) 갖고 그 정상까지 올라감으로서, 그에 알맞게 명명된 ‘위험한 여행’이라는 그 신 루트의 초등을 해냈다.

클라이머가 이 차이를 제대로 구별치 못하고 쉬운 지형에서 안이하게 될 때, 매우 비극적인 사고가 생기곤 한다. 2000년 7월 6일, 카메룬 타그가 롱스 피크의 the Diamond Face로 갔다. 그 암벽의 중간 지점으로 가기 위해 브로드웨이라고 부르는 아래로 기울어진 커다란 렛지(ledge)를 따라 그가 옆으로 트래버스하기로 했다. 타크 같은 능력 있는 클라이머에게 그것은 쉬운 트래버스라고 할 만 했고, 그 페이스 위 조금 더 올라 간 곳에서의 어려운 등반을 위한 시간을 아끼려고, 그는 로프 맬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그런데 어쩌다가 그만 그가 집중력을 잃고, 흔들리는 돌 하나를 잡아당기다가 그 돌이 빠지면서 뒤로 넘어졌다. 타그가 다시 균형을 잡으려고 했지만, 그 렛지의 끄트머리로 미끄러지면서 아무데나 잡아보려고 손을 휘저었다. 그는 브로드웨이 절벽 끝으로 사라졌고 240 미터 추락했다. 추락 확률이 거의 없다시피 했으나 그 결과는 치명적이었다.

가능성과 결과의 구별은 클라이밍 뿐 아니라 일과 인생과 사업에도 적용된다. 1994년 엔텔 사가 자사의 펜티엄 마이크로프로세서에서 부동 십진수 (floating decimal-point) 상의 결함을 처음 발견했을 때, 그로 인해 나누기 할 때 반올림 상의 실수가 일어날 가능성은 보통 스프레드 쉬트 사용자의 경우 27,000년에 단 한번 정도라고 엔지니어들이 추산했다. 무한소에 가까운 이 가능성이 인텔 사 경영진들의 눈을 멀게 하여, 그 반대편에서의 천문학적으로 큰 결과에 관해 걱정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바로 그 10억분의 1의 확률을 가진 일이 한 수학 교수에게 생겼을 때, 폭발적으로 인터넷 채팅이 벌어졌고, 이어서 언론의 주의를 끌게 되었다. 당시의 엔텔 CEO인 앤디 그로브가 ‘편집증 환자만이 살아 남는다’라는 - 한편, 클라이머를 위해서는 좋은 제목이다 - 그의 책에서 말했듯이, 인텔사는 CNN으로부터 공격 받았고, 신문 지상에서 조롱거리가 되었으며, 불만에 찬 고객들로부터 시달림을 받았다. 1994년 12월 2일, 그로브가 아침에 일어나 “IBM이 펜티엄 사용한 컴퓨터 출하를 전면 금지하다”라는 무서운 헤드라인을 읽게 되었다. 결국, 인텔사는 4억 7천 5백만 불의 손실을 - 일년 연구 개발 예산의 반 또는 펜티엄 광고비 5년 치에 해당 - 입었다.

그 추락으로 인해 인텔사가 죽지는 않았으나, 확실히 렛지에 충돌하여 다리가 부러진 셈이다. 인텔사를 위해서 다행인 점은, 이제 인텔사는 가능성 뿐 아니라 결과도 중요 시 하는 사업 방식으로 바꾸었다는 점이다. 최근까지, 인텔사의 펜티엄이 또 다른 문제를 일으켰다는 소식을 들어 보지 못했다.

결과와 가능성의 구별이 사업가로서 삶의 열쇠다. 스탠포드 경영 대학원에서 내가 가르칠 때, 많은 학생들이 이 구별을 이해하지 못했고, 이것이 그들의 선택에 제약을 가했다. 한 학생이 내 사무실에 찾아와 “정말로 제 개인 사업을 하고 싶긴 한데, 너무 위험해 보여서, IBM에 취직하려고 합니다.” 라고 말했다.

“새로 시작한 일에 최선의 노력을 다해보고 실패하면 어떻게 될까?”

“아마 취직할 것 같아요” 라고 그녀가 말했다.

“그런데 그걸 하기가 얼마나 힘들까?”

“별로 힘들지 않겠죠.”

“그러면 지금 학생은 최악의 시나리오라고 해도 지금 현재의 상태로 - 반듯한 직장을 갖는 것에 - 돌아올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이군.”

스탠포드 MBA가 창업을 시도하는 것은 볼트가 잘 박혀 있는 스포츠 루트에서 자신의 한계까지 도전해보는 (going to fallure) 것과 같다. 사실, 그 성공 확률은 낮으나 그 추락의 결과에는 극소의 위험 밖에 없다. 로프가 그녀를 잡아 줄 것이다. 그녀 혼자 나아갔고, 최선을 다해 노력했으며, 간신히 끝까지 올라가서 성공적으로 창업했다. 그러나 그녀는 가능성과 결과를 구별치 못했는지 여부를 결코 알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여기서의 요지는 가능성과 결과의 차이를 명확히 해야 하고, 그에 따라 행동해야 한다는 점이다. 위험한 루트들 (또는 우리 또는 우리의 회사를 망하게 할지 모르는 인생의 상황들)에서는,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는 한 그 지형이 얼마나 어렵고 쉽든 간에 상관없이, 한계까지 해보다가 추락하는 등반을 (falllure) 피해야 한다. 크고 든든한 볼트가 박힌 스포츠 루트에서는 (Crystall Ball 루트처럼, 또는 내 제자의 창업 모험처럼) 5%의 성공 확률만 있어도 어려운 도전을 해 볼 수 있고 전면적인 도전 방식으로 (fallure mode) 자신을 투척해 볼 수 있으나,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위험하진 않다. 관건은 적절한 주의이며, 이것이 우리의 다음 교훈이다.

교훈 3
오늘, 미래 속에서 등반하라: 마음의 틀을 바꾸어 성공하기

(Climb in the Future, Today: How to Succeed by Changing Your Frame of Mind)

1978년 나는 '창세기‘란 루트에 집착하게 되었다. 그것은 콜로라도 엘로라도 캐년의 약간 오버행을 이루고 있는 30 미터 길이의 붉은 바위였다. 이 루트는 이제까지 “자유등반” 된 적이 없으며, 결코 ’프리로는‘ 오를 수 없으리라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생각했다 (어느 루트를 자유 등반한다는 것은 로프를 갖고 등반하긴 하지만, 그것은 안전을 위한 장비로서만 쓰이며; 손으로 어떤 장비도 당기지 않고, 순전히 자기 힘으로 그 바위를 오른다. 로프와 확보 장비는 추락한 경우에 잡아주기 위해 쓰일 뿐이다.)

그러던 어느 날, 미국 동부 해안에서 온 존 브랙이라는 체격이 크고 힘센 클라이머가 ‘창세기’ 루트를 시도하는 것을 보았다. 그가 매끈한 오버행 구간까지 (아무도 거기까지 등반할 수 없다고 누구나 생각했던 곳) 올라갔고 거기서 다시 몸을 위로 휙 날렸다. 그의 손이 그 벽 위의 어떤 작은 것에 닿았고, 겨우 1 초 동안 - 잠시 멈추어 있었음 - 거기에 붙어 있다가 그의 손이 빠지면서 7.5 m 떨어지며 로프에 매달렸다. 브랙이 이 몸 날리는 동작을 10 번 내지 20 번 한 후 포기했다. “꽤 오랫 동안 완등될 것 같지 않은데,” 라고 그가 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상상력이 불타올랐다. “단 일초라도 그가 그 작은 홀드에 매달릴 수 있다면, 그 루트는 여하튼 분명히 올라갈 수 있는 거야.” 라고 나는 생각했다. 그래서 2학년 첫 학기를 위해 학교로 돌아가기 전에 한번 시도나 해보려고 그 암벽에 과감히 달라 붙었다. 물론 전혀 할 수 없었지만, 브랙이 그것을 향해 점프했던 그 작은 홀드까지 정확하게 등반하는 확실한 방법을 찾을 수 있었고, 그 다음 홀드까지 올라갈 수 있을 정도로 그저 조금 만 더 오래 그 홀드에 매달려 있을 수만 있다면 될 것 같았다.

학교에 돌아오자마자, 그것을 위한 훈련을 하다가 손가락 끝에 생긴 물집을 터뜨리기 위해 저고리 주머니에 바늘 하나를 갖고 다니면서, 수업 시간 사이사이 트레이닝 했다. 그러나 그런 트레이닝에도 불구하고, 그 루트를 오르지 못했다. 체력 면에서는 강했으나, 심리적으로 그 루트가 등반불가라는 생각에 짓눌려 있었다. 내 의식의 틀을 바꿀 필요가 있었다.

그러나 어떻게 그걸 하는가?

등반 사를 연구하면서, 나는 하나의 유형을 알게 되었다: 한 세대에 의해 “불가능하다”고 여겨졌던 등반 루트가 두 세대 후에는 결국 “그렇게 어렵지 않게” 된다는 점이다. 그래서 나는 스스로에게 하나의 심리적인 트릭을 써보기로 했다. 내가 가장 재능을 잘 타고난 클라이머나 가장 힘이 센 클라이머 또는 가장 대담한 클라이머가 결코 될 수 없음을 깨달았다. 그러나 아마 가장 미래지향적인 클라이머가 될 수는 있었다. 생각을 바꾸는 실험을 좀 해보기로 했다. 15년 후를 상상하려고 노력하면서, “1990년 클라이머에게 ‘창세기’가 어떻게 보일까?” 라고 나 자신에게 물었다. 그 대답은 종소리처럼 분명히 되돌아 왔다. 1990년대에는 톱 클라이머들이, ‘창세기’를 훨씬 더 어려운 루트를 하기 위한 그저 워밍업 루트 정도로 보고, 쉽고 편하게 ‘창세기’를 온사이트 할 것 같았다.

내 마음 속으로 그 때가 1979년이 아니고 1994년인 척 하기로 결심했다. 나는 자그마한 일정관리 캘린더 한 권을 사서 년도 표시를 모두 바꾸었다. 나는 그 협곡으로 걸어가서 1990년 클라이머들이 ‘창세기’를 보는 식으로 상상하고자 노력했다.

그렇게 마음을 바꿔먹고, 내가 드디어 그 루트를 완등하게 되었다. 그것이 상당한 센세이션을 불러일으켰고 그 당시의 많은 베스트 클라이머들을 어리둥절하게 만들었다. 그들은 아직도 1979년 속에서 등반하고 있었던데 비해, 나는 심리적으로는 1994년에 나 자신을 갖다 놓았었던 것이다. 그리고 실제로 1990년 대 초가 되자, 바로 그 엘리트 클라이머들이 창세기‘를 일상적으로 등반하게 되었고, 이제는 특별히 어려운 루트라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영국에서 온 한 나보다 훨씬 강한 어느 클라이머는 테니스 화를 신고서도 그것을 등반하기까지 했다!

의식 구조 개조는 각계각층의 사람들이 모두 관계된다. 특히 창업자나 미래 지향적인 회사를 만드는 사람들에게 그러하다. 그 열쇠는 그 밑에 있는 패턴을 인식하고 - 때로는 역사적 관점을 활용을 통해 - 그리고 그 패턴들이 다음 세대에게 어떤 의미를 갖는지를 미리 마음 속으로 그려 보는 것이다. 스티브 좁스가 1979년 제록스 PARC 연구소를 방문했을 때, 그 가 본 것은 화살표로 찍고 클립하는 장비들과 종이에 인쇄될 수 있는 것과 똑 같이 디스플레이되는 스크린, 그리고 포매팅 방식 등을 쓰는 일군(一群)의 컴퓨터였다. 오늘날 우리는 이것을 당연시한다. 내가 본대로 인쇄되는 디스플레이 화면을 보며 이 단어들을 내가 타이핑하고 있으며, 마우스를 써서 페이지 여기저기로 움직일 수 있다. 그러나 1979년에는 개인용 컴퓨터는 물론이고 상용 컴퓨터조차도 이런 능력을 갖지 않았다. 이런 이노베이션이 언젠가는 당연하게 받아질 것을 좁스는 즉시 깨달았다. 그는, 이러한 특징들이, 향후 10년이나 20년 후 앞으로 컴퓨터가 어떻게 보일 것인가 상상했다. 그 때는 낮은 가격 컴퓨터에서도 기본적인 메뉴가 되기 마련이라고 보았다.

그러나 좁스는, 세상이 이렇게 변화하기를 기다리기 보다는, 마치 세상이 이미 변화된 듯 행동하기로 결심했다. 그리하여 시장의 자연스런 힘이 그러한 도구를 필요로 하기 한참 전에, 1984년 맥킨토쉬 컴퓨터가 출시되었다. 그것이 상당한 센세이션을 일으켰고, IBM 같은 훨씬 막강하고 우월한 회사들을 놀라게 했다. 물론 오늘날은 이러한 제품 특징을 우리는 별로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고 있다: 죱스는 그저 시간적으로 남보다 한 걸음 앞섰고 이러한 의식 구조를 갖고 그 회사의 차세대 컴퓨터를 만들었다.

등반이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것은 가장 큰 장벽은 바위에 있는 게 아니라 우리의 마음속에 있다는 것이다. 정신적으로 무너지기 때문에 우리의 한계까지 나아가지 못한다. 가능성과 결과를 혼동하기 때문에 리스크를 감수하지 못하며, 추락 가능성이 낮을 때도 우리는 형편없이 등반한다 (그리하여 어리석게도 모든 것을 위험하게 만든다). 그리고 어쩌면 가장 큰 실패 속에서, 오늘의 우리의 의식구조가 우리의 창의성과 능력을 제한하게 만들고 만다. 지금 우리가 한계라고 인식하는 것은 그저 다음 세대가 추구해야할 궁극적 한계로 향하는 디딤돌이라고 간주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니, 지금 당장 다음 세대에 동참하고, 오늘의 한계를 넘어 나아갑시다. 기다릴 이유가 없지 않겠습니까?

대니얼 부어스틴은 그의 the Discoverers라는 고전적인 저서에서 진보의 주된 장벽은 무지가 아니요 그릇된 지식 그리고 전문가의 그릇된 의견이라고 주장했다. 뭔가를 발견하는 사람들은 할 수 있는 일을 더 분명히 본다. 왜냐 하면 그들은 모든 일이 어떻게 되어가기 마련이라는 지식을 덜 갖고 있고 자기 시대의 한계에 의해 갇혀 있지 않기 때문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새로운 돌파구는 주로 우리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을 바꾸는데서 오지 않으며, 무엇보다 먼저 우리가 하는 일에 관한 우리의 사고방식의 변화를 통해서 온다는 것을 등반이 가르쳐준다. 바로 이것이 모든 등반 중에서 가장 어려운 등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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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 콜린스, www.fastcompany.com
shlee 抄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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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섬 (2004-01-07 23:19:59)
잘 읽었습니다.
박기호 (2004-04-11 22:05:19)
가슴이 뚫리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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